스마트폰 게임이..동네 북이냐? 잡담 혹은 바늘찌르기

초등생 아들 공개수업 간 엄마…“이럴수가”

뭐 어느정도는 그렇다 치자고

...초등 남학생 망치는 원흉 스마트폰 게임..!!
이라니.....

보쇼..
스맛폰이 뭐 초등학교에서 전자교재용 단말기로 채택을 해서 무상 공급한것도 아니고
애가 졸랐건 뭐했건 결국 부모가 사준것 아닌가?

솔직히 애들이 왕따를 시키네 뭐하네 하는거...100%까진 아니어도 가정교육문제도 매우 크다.

집에서 애들을 저리 풀어주고 해달라는거 다해줌서...
남탓이야 다른것때문이야..

뭐냐 저게 -_-
솔까말......
스맛폰이....애들쓰기엔 좀 그렇지않나?????????????

물론 애들이라고 스맛폰 쓰지말란 법은 없지만 말야, 문젠 태블릿이건 놋북이건 넷북이건 스맛폰이건...컨텐츠를 접근할수있는 디바이스를 쓰게 해주면 당연히 쓰려고 들지 안쓰려고 하나??????
그리고
게임이란게 원래 "게임성"을 극대화 해야 잘나가지. 결국 집중도와 중독성을 가지지않으면 그건 성공하지못한 게임이 되거든..

애들이 스맛폰때문에 집중도가 떨어저염...애들이 게임만해염..
..
그 게임할수있게 스맛폰 사준게 누군데??????????????????????????

학원에 학교에 정신없이 쫒기는 애들이..뛰어놀 시간도, 뛰어놀 친구도없이,뛰어논다는게 뭔지도 모르게 사육당하는 상황에..
그게 스맛폰때문이야? 게임때문이야?

애들 갈구지마라 좀...

뭐 교육이 중요한건 맞는데 말이지, 부모란 작자들이 (Me도 부모임...젠장) 애들의 장래나 미래를 감안해서 아이 적성에 맞는 공부를 시키는게 아니라 그저 좋은 대학 좋은 과..이런것만 찾는데...과연 애들이 공부에 취미를 붙일수있을까?
공부에 취미를 붙인단 말도 좀 웃기지 -_-....

사실 전망 좋은 직업이니 전공이니 이런거 물어보는 학부모들 꽤나 계신데..
이보쇼들..전망 좋은 직업이란게 어딨나...전망 좋고 취업잘되는 직업이란게 어딨어????????

그렇게 따짐 의대나 법대 혹은 첨단 기술관련 이공계로 보내던가.......
당연히 저런게 전망 좋기론 유명한것 아녀?

서울대 나와도 다 잘나가는거 아니고 유명하다는 전공졸업해도 취업못하는애들은 못하고
다 제각각이다...
애들 적성이나 파악하고 그걸 잘 키울 방법이나 찾지.... 응?

스맛폰 게임탓할바엔 그런 환경을 없애던가.
물론 학교가니 친구들 다가지고있엉 엉엉 사줘요 엉엉 하면 사줘야 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헌데..부모가 확실함 애들도 따라가...
안그럴꺼같다고?

그건 그렇게생각하는 사람들 잘못이고...
부모의 가치관이 확실하고 사는 환경이 확실하면 최소한애들도 엇나가지않아...
부모탓이란거 한번이나 생각해봤을까????????

내 예전 회사 책임연구원님 아들은 어려서부터 적성살려서 갖은 운동을 시켰는데 지금 단증만해도 -_-...
체대가는것도 뭐 우스운 상황이고 무엇보다 본인도 대학을 가는게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니라 더 체계적으로 운동을 배우고싶어서..란다.

꼴랑 운동 좀 잘하는게 뭐 좋냐..라고 할사람도있지
헌데..
그 운동이란것도 제대로 함...잘나갈수있는건 익히 알지?
본인이 즐거워 하고 본인이 즐기고 적성에 맞으니 잘하게 되고 또 그만큼 더 즐기면서 하게되지...
본인이 즐겨하는것이고 본인 스스로 적성에 맞는 것을 한다는게..얼마나 즐거운 일이란거..아나?

애들좀 그만잡아...
그렇게 잡아대니 젠장 애들이 잔인한 짓도 하자나...

글고
솔직히..저 기사는 걍 병맛기사라고 밖에 생각안되지만...
부모란 것들이 제정신 못차리고 엉뚱한데 탓하는경우가 많다는거..내 주변 부모들만 봐도 익히 수십명은 보고있거등..

지자식 소중한건 알겠는데, 정말 자식에게 소중한게 뭔지..그거나 우선 생각들해바조..제발...애들 불쌍해..

PS: 남자애들이 여자보다 공부에는 좀 맘붙이기 힘들지...헌데 ... 애들이 왜 힘들어하는지..그건 생각해봤나?

애플이 상생을 안했다 치자고. 그래도 삼성이 상생한다고 말할순없자나? 잡담 혹은 바늘찌르기

애플 `아이폰4S` 대박의 비밀 알고 보니…`충격`


 

으음......................기사제목으로 대충 어떤 내용일지는 알아차렸지만......

그니깐 요지는
애플은 이익을많이 내는데 협력업체는 이익을 못내고 있고
우리나라가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상생을 외치는데 반해서 애플은 전혀 그렇지 못한 소위 악덕기업이라는
뭐 그런말이지

삼성이나 엘지..이런 한국기업이 정말 상생을 해오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게냐

요새는 아니다 변하고 있다..라고 말하고싶겠지.

헌데

정말 삼성 협력업체들이 상생이라는 허울좋은 변명에 동의할수있을까

이놈의 언론이란놈들이 하는 짓거리가 늘 정부편 공룡기업편만들고 진실따윈 나몰라라 하는 이런 세태...

아침에 버스에서 CBS방송을 듣는데 부러진화살관련 방송을 하면서 그러더라

아무리 재판결과에 불만이 있어도 판사에게 석궁을 들고가서 위협하는건 옳지않다

....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은 맞지
헌데
그 교수양반이 대입시험문제의 오류를 찾아내고 그로인해 해임당하고 ..
그걸 재판부가 옳은 행위에대해 찬사는 못할 망정 대학편을 들어 결국 재임용도 안되지않았나...

그게 정말 옳은 재판이었다는 것인가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한낱 우리 가카께 송구한 불초소생, 고작서민 주제에 가끔 한우도 드시는 좌빨인데
저정도는 옳지않다는걸 안다.

막말로

대입시험문제의 오류를 찾아낸 교수라면 양심적인 사람아닌가
그런양반을 해임시킨 학교와 동조한 교수들이 비양심적인것아닌가

아 자꾸 딴 얘기로 새는구나...
여튼

다 같다..이놈의 나라. 이놈의 언론들.

예전에 삼성과 협력해서 제품개발할때...계약서 안써주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몇개월이지나 갑자기 사업취소라 하더니 반년도 안되서 우리회사 제품과 동일한 타입의 제품이 나오더라........

그런게 한국기업들이다 젠장


왜 결혼해서 마누라 괴롭히고 왜 애를 낳아서 애를 괴롭히냐... 잡담 혹은 바늘찌르기

어제 고향에서 혼자 털래 털래 내려오는데(마눌님은 처가로 고고씽해야 하니깐...본가에 내버려두고 -_-::::::: 덕분에 고향에서 한우랑 오리고기 쌔빠지게 먹자나!)
장항선 서천발 9시36분차를 타고 올라오는데
광천쯤에서 어떤 젊은 부부가 애를 안고 탓다.
내 앞자리에 앉는데 아..애기..애기...

잘해야 백일?

겁나 귀엽다..(울 귀요미..였던아들놈은 어느새 말썽레벨이 짱구수준이라..더이상..흑)

타자마자 자리에 앉아서 애기를 물고 빨고
아..참 사내놈 애기 귀여워 하네..하고 잠을 청했는데
슬슬 기차가 아산을 벗어나면서 해가 들고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실내온도도 많이 올라갔고 특히 공기는 거의 갑갑한수준

이정도면 애기들은 체온도 많이 오르고 공기가 탁해서 울기 시작할 시점
걱정스레 앞자리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애기 얼굴이 홍조가득..
그 와중에 애기아빠가 게임방송을 켜니까 애기엄마가 애기를 어르면서 그런다

"니네아빠는 예의도없지~스피커로 티비나 보고~"

순간 애기아빠가 조용히해라..라고 나즈막히 말한다
그러다 애기가 좀더 칭얼거리니까 애기엄마가 아기한테 부채질을 하고...얼굴을 물수건으로 토닥이고..
애를쓰고있는 찰라

애기엄마가 (무척 어려보였다)애기를 안고 어르고 달래는데 젊은 애기아빠가 속삭인다

"어서 애데리고 좀 나가"

애기엄마가 주섬주섬 옷을 입고 애기를 안고 나가는데 마눌님생각이 났다

저만할때 애기델꼬 기차탐 저럴때가 제일 힘들지 암.....

애기가 나가자 마자 애기아빠가 스맛폰(갤럭시S2~)를 꺼내더니 게임방송을 본다
헌데

애기아빠가 스피커 볼륨을 높이더니 게임방송을 보기 시작한다
솔직히 너무  소리가 커서 나도 한마디 하려했는데
애기아빠 앞자리의 어떤 커플이 애기아빠를 흘끔 보더니 그런다
"이어폰꼽고 들으시면 안되요?"

애기아빠가 대꾸도없이 바로 스맛폰을 내려놓더니 "아씨바.."

얼래..애가 젊어서 그른가...쩝 왜저래 하고 인상찡그리고 있는데
다시 애기엄마가 돌아왔다
우쭈쭈~애기가 지나가면서 날 보길래 우쭈쭈해줬는데 방그레 웃는다 아우 귀요미~~~~~~>..<

헌데 애기엄마가 앉자마자 애기가 다시 칭얼칭얼
공기가 워낙 탁하니 원..

헌데 애기아빠의 본성 작열...

"조용히좀해 아씨바..작작울어라"

얼래?

애기엄마가 작게 말한다

"더운데 그럴수도있지.애기가 뭘안다고 애기한테 그래"

그러자 애기아빠"놈"이 그런다

"어디서 말대꾸야?죽을래?"

응??????????????????????

"조용히해 사람들이 듣자나"

"애새끼나 애미나 말 드럽게 안들어"

그와중에 애기가 운다

"좀 조용히하라고 새꺄"

애기 머리를 툭 미는데
어라어라!!!!!!!!

애기 고개가 뒤로 확 젓혀질 만큼 쎄게 민다

"적당히 해라 응?애기한테 왜이래?"

애기엄마가 불끈한다
애기엄마 표정이 장난아니다

"뒤질래? 애새끼랑 같이 뒤져볼래?"

뭐냐 이새끼...................

순간 열이 훅 받는다
솔직히 애 생기기 전엔 아이에대해 별다른 감흥이없었지만
애가 생기고 나니..이게 참..여튼

그러더니 애기엄마머리를 물병으로 냅다 갈긴다
이쯤되니 열차 내의 승객들이 다 쳐다본다

"조용히해 내가 애기 달랠테니까 조용히좀 있어"

애기엄마가 헝클어진 머리를 넘기면서 조용조용얘기한다

"어쭈? 아주 뒤질라고. 너 집에가서 보자"

애비라는 색히가....................
욱하고선...한마디 하려 했는데

아.....썅
내가 또 편들고 나서거나 지랄하면 저색히 성깔에 집에가서 대판하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결국 영등포

기차에서 내리는데 이새끼............
지꺼 작은 가방하나 덜렁들고 내린다
어우

헌데
더 가관인건
문이 열리는걸 기다리는데 그색히 하는말
"너랑 애새끼땜에 방송하나도 못봤잖아"

이런 오라질놈을 봤나 -_-

내리면서 지 마누라 등짝을 민다
애기 안고 내리던 애기엄마가 휘청이고 다행히 앞서 가던 아저씨하나가 붙잡아서 넘어지는건 막았다

그 후에도 에스컬레이터 올라가는 내내 지 마누라 등짝을 주먹으로 쿵쿵......
아 썅
저런 색히밑에서 자라날 저 애기앞날이 걱정이다

난 최소한 저런 짓은 안해야지...

젠장

졸라 열받는 귀성길이었다.

난 디자이너거든...이십밥빠라바 사장색히야 걍 사는 얘기

경력11년이니까 대충 뭐설계도 알고 대충 금형도 알고...재질도 알고..

그래..뭐... 괜찮은 회사가 경영난으로 직원들 감원하는 바람에 나와서 프리뛰다

아 씨바 이거 사람사는게 아니다..싶어 다시 직장 고고씽 한것인데..

치과 의료기쪽은 생소했지만 다른 의료기와 달리 IT모바일 제품처럼 작은 편에 디스플레이나 배터리등 기본 구조는 비슷한게 많아서 나름 할만하다 했다

헌데........

하.........................................................................................................

수량

보통 금형을 파면 IT쪽이라면 최소 첫 로트에 일이만개정도에서 많게는 몇만개씩 뽑는데

이동넨...시사출로 제품을 만들지않나...첫로트에 2-300개씩 뽑질않나..

대응해주는 회사가 대단하다 -_- 부천에 있는 다울플라텍이란회산데 혹 관련업종 종사자들이 계시다면 사출도 잘하고 설계도 잘하니까 연락한번씩 해보시길...게다가성격 좋으시다...(다울플라텍 오동만 실장님..감사합니다 -_-)

여튼

문젠
첨엔 그저그런가 했는데

엔터기술이란 회사에서 설계를 하고 개발을 한 제품을 생산할때까진 뭐 그렇다쳐도...
그 후 엔터와 결별하며 독자노선을 취한것인데...

연구원들이 죄다 일년정도면그만두거나 심하면몇개월 근무를 하고 나간걸 발견했다.

뭐 일도 꽤 잘하는 양반들이던데...

내 전임자였던 여자 디자이너는 여자 디자이너치고 드물게 솔리드웍스도 꽤 잘다루는 디자이너였다.

헌데......

알고보니 니기랄.....

치과의사인 사장이..사람들 들들 볶는다

예컨데

지금 개발중인 구강카메라의 경우를 예로들겠다.

무선제품을 개발중이었는데 갑자기 시제품개발지원사업을 지원하자고 하더라.
금형비와 시제품개발비를 지원해주는사업..대략 1500만원 정도..

문젠 제품개발을 하던 와중에 갑자기 2달짜리 일정으로 마감을 하라고하니...

당시 OFN (Optical Finger Navigation)모듈과 RF모듈을 붙이는것도 버거워 하던 찰라였는데...

뭐 울며겨자먹기로 사업신청해서..떨어지길 바랬는데 대뜸 1순위로 붙어버리고....

결국 RF모듈도 선정되지도 않고 OFN도 불안정한상태로 개발에 들어갔다.

더더욱 참사는
중국제 OFN모듈의 드라이버 지원이 미흡해 급기야 1개월을 남겨놓고 부품이 국산 애트랩이란 회사 제품으로 바뀌어버린것.

중국산은 적외선 출력이 좋은건지 노출을 안해도 동작이 되었던 터라 데코 윈도우로 막고 누르는 방식으로 디자인 했는데, 이건 노출을 해야 감지가 되었다.

결국 구조 변경.

급기야 위치가 올라가야 해서 커넥터니 PCB니 죄다 변경.

게다가....
무선캠을 개발하면서 카메라헤드부위 사출물을 신규로 하고 배터리와 메인 PCB가 들어가는 메인바디를 공용하는 제품으로 컨셉을잡았는데, 공용이란게 사장에겐 좋은 말이지만 개발자에겐 한계가 주어진 개발이 된다는 의미.
난관이많았지만 어케어케커버했다.

헌데

"헤드를 새로 만들었으니 이참에 유선캠도 신제품으로 마우스 넣어서 하지?"

....
즉..무선을 하는 와중에 유선캠 신제품을 개발하자는 것..............

결국 무선을 하며 유선을 하니..일정이 겹치고 겹쳐 일정이 줄줄 늘어진다. 

그런데 사장 하는말

"왜 일정이 밀리냐. 이해가 안간다"

...



그래도 어케어케 해서 얼마전 영국 전시회에 워킹샘플을 2대나 만들어갔다.

헌데...그 이전부터 걱정하던 문제가 터졌다.
손에 쥐고 쓰다보니 RF신호가 차단되는 것.

결국 RF모듈 커버 뒤로 안테나를 뽑아야 하는상황이 되었는데....

이놈의 사장...

"그런걸 왜 이제야 말하나요"

..
그 이전부터 누누히 말해왔고 또 그게 왜 디자인탓이냔 말이다!

어쨋든 수정을 해야 하는데 시제품 개발 지원 사업은 15일 연장이 한계.
10월30일부터 15일 즉 11월15일이 마감인데 10월25일인 오늘까지 커버쪽 수정을 20%도 못했다.
해서

이러저러해서 연기가 불가피하다 라고 했는데..........................

"개발자가 일정을 못맞추는건 능력의 문제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의식이 있어야지 왜 면피를 하려 하냐"

란다....

거기에 우리는 핀홀렌즈를 알루미늄을 깎아서 렌즈를 조립해서 쓴다.
왜 일반 핀홀렌즈안쓰냐고?

금형비가 비싸서 그런단다 -_-.........

문젠
CMOS센서 글래스와 알루미늄 렌즈 바디가 닿으면서 미세한 유리 조각들이 나온것.

처음엔 어디서 나온 티끌인지 몰랐다.
동료 연구원이 현미경으로 보다가 결정을 발견하여 결국 원인 파악을 한것인데

이게 또 내탓이란다.............................

알루미늄은 경도가 높아 센서에 스크래치나 크랙이 갈수도 있을것같다..라니

"생각좀하고 말해라 겨우 그정도로 깨질거면 누가 그런렌즈 쓰겠냐"

..네 당신이 쓰자고 했습니다.

그게 4월 중순 얘기다.

아무도 모르던 현상을 꼼꼼한 (마치 가카마냥) 동료연구원이 발견한것인데....

이게 내탓이란다.

나 씨바알

내가 프리뛰는거 짜증나고 심신이 피곤해서 회사생활하자고 들어오긴한건데
이건 아니다.........

해서
지금 하는 프로젝트는 마치고 나갈꺼다.

왜 썅 한국 사장들은 다 저따구란말이냐.....

정말....이나라에서 실무자가 뭔갈 한다는건..정말어렵다...

제기랄..
담배만는다...

김정일의 배포큰 600만원 걍 사는 얘기




하앗!
난 이런사람이얏!

*본인의 10분전 일임 -_-

구차나서 내이름은 커버안함 -_- 유명인도 아니곳..잇힝~

참고로 친한 동생인데 난 유부남임 -_-:::: 미안 동생


로저 피티오트 교수 인터뷰 (2011-08-11) Design에대한 주절주절 배설


무엇을 디자인하느냐 하는 장르도 중요하지만 어떤 시대에 디자인하느냐는 더 중요한 문제다. 디자이너라면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 속해있는 시대에 맞는 디자인을 펼쳐야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의 취향은 사회의 흐름에 의해 형성되고 그러한 변화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대사회에서 인터넷과 디지털 미디어의 존재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갖추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그것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현대인의 패턴이 그것을 증명한다.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디자인 개념으로 ‘오픈소스’를 꼽는 로저 피티오트 교수. 그가 말하는 이 시대와 어울리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조현신 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들어본다.

대담 | 조현신 국민대학교 디자인 연구소 d_페다고지 소장
진행 | 김소연 d_페다고지 연구원
에디터 | 최유진(
yjchoi@jungle.co.kr)



오픈소스라는 개념의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으신데요. 구체적으로 오픈소스란 무엇이며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요?
오픈소스, 오픈디자인은 말 그대로 디자인을 오픈하는 것으로 현재 모든 곳에서 퍼지고 있습니다. 유저들이 웹사이트에서 디자인을 다운로드 받는 것이죠. 아이디어를 오픈하는 이러한 개념은 점차적으로 매우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제 디자인을 무료로 주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것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것이죠. 제 사이트에 시계 디자인을 올려 둔 것이 있습니다. 디자인을 다운로드 받으면 9000원 정도에 직접 시계를 만들어 사용할 수도 있어요. 원하는 사람은 디자인된, 다 만들어진 시계 구입도 가능하고요. 이는 문화적 집중, 집합(convergence)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디자인과 기술의 집합 혹은 문화와 기술의 만남 정도로 말할 수 있겠죠. 이러한 컨셉을 발전시키면서 오픈소스와 관련된 사이트를 만들었고, 최근에는 open form에 대한 사이트도 오픈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오픈, 공유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 cc)의 개념입니까?
그렇습니다. 저작권을 내가 갖는 것이 아니라 저작권의 부분을 합법적으로 공유하는 것입니다. 디자이너라고 해서 저작권, 카피라이트를 갖는다는 것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발상이에요. 우리는 변화하고 있고, 또 변화되어야만 하니까요. 저작권이 존재해도 인터넷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혀 다릅니다. 원래대로 하면 사진 한 장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어요. 그러나 인터넷상에서 저작권은 적절히 적용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누가 저작권을 붙인다 해도 보호받을 수 없다는 말이죠. 저작권이라는 개념은 매우 아날로그적이며 디지털 세상에서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세상은 바뀌었고, 우린 이런 사실을 받아들여야합니다. 매우 좋은 디자이너가 된다면 저작권을 보호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디자인을 알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작권을 보호하고자 자신의 디자인을 혼자서만 간직한다면, 그 디자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스스로 유명해지는 것은 자신의 디자인을 널리 알리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오픈하는 것입니다. 산업시대 디자인은 기업의 후원을 받아 기업의 힘으로만 디자인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서는 개인 디자이너가 얼마든지 대중과 접촉하면서 디자인 컨셉과 디자인 생산 시스템을 공유하며 자신의 물건을 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을 공유하고, 생산은 정보를 통해 각자의 장소에서 적절하게 진행하고. 재미있지 않은가요? 이런 의미에서 저는 공예가, 디지털 공예가입니다. 공예에서 디자인으로, 그 다음은 디지털 공예의 시댑니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디자인하고, 디지털 기술로 그것을 배포하는 것이죠. 거대 생산체제에 기대어 디자인과 생산이 고착되어 있는 관계는 이제 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창의성(creativity)를 구입하지 않아요. 단지 서비스를 구입할 뿐이지요. 오픈디자인에 의해 디자이너와 유저간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음악을 다운 받아서 무료로 듣지만, 매우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 콘서트 또한 즐기고 있습니다. 디자인도 이와 같지요.



패러다임의 변화와 컨셉, 모두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이러한 개념이 디자인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는 모든 것이 다릅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완전히 변했어요. 일하는 방식의 변화보다 마인드 세팅 자체가 중요합니다. 공룡이 사라진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지 않습니까(웃음). 저는 무료 오픈, 거기에 중점을 둡니다. 디자인 코딩에 의한 재배치, 바로 형태를 만드는 것 대신에 코드를 대입시키는 것입니다. 디지털은 이러한 오픈 코드를 만들고 확산시키기 위해 탄생된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를 앞으로 코드 메이커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미래엔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컨셉이 닫혀 있는 개념이고 완결된 개념이라면, 코드는 해독자가 이미 디코딩, 즉 해석할 수 있는 체제를 갖고 있을 때 작동되는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오픈 즉 개방되지 않으면 무효한 개념이지요. 그런 면에서 코드는 오픈과 연결되어 있고, 디지털 제작, 생산과 연관되어 있으며 디지털은 실제(real)로 가는 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발생적 디자인(generative design)이 완전히 끝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제작 및 제조는 디지털에서 기계로 옮겨져서 생산됩니다. 미래엔 아마 물건을 살 필요 없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다운로드 받아 프린트 하고, 그러면 가정에서 물건을 제작하거나 가까운 곳에서 만들고. 그렇게 사용이 가능할 것입니다. 3D 프린트만 사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죠. 디자인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저작권을 갖는 것은 이미 끝났어요. 지금은 내가 디자인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제 곧 사람들은 함께 협업(collaboration)할 것이고 나의 것(my stuff)이 아니라 우리의 것((our stuff)이 될 것입니다.



로저 선생의 오픈 디자인 개념은 당신의 웹 사이트에서 자세히 알 수 있고 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대와 홍익대에서는 이미 이 프로그램으로 수업을 많이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선생님의 개념을 좀 더 자세히 알고 공유하길 바랍니다. 이제 한국과의 인연, 한국의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해 보지요. 한국에는 어떤 계기로 오게 되었습니까?
KIDP와 연관이 있던 파리의 한 교수가 한국 디자인 기업과의 프로모션과 관련이 있었고, 많은 외국인 디자이너들을 초대하면서 저를 초대했습니다. 처음에 한국에 온 것은 그러한 계기에서였죠. 1994년 처음으로 한국에 왔고, 한국은 5회 가량 방문했었습니다. 그때 한국의 디자인 기업과 함께 일을 하게 됐죠.


한국에 와서 어떠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 한국의 기업과 일한 경험, 결과에 대한 만족도 등을 설명해 주시지요.
2, 3주 정도 한국의 회사에 머물면서 한국의 디자이너들을 트레이닝하는 일을 했습니다. 유럽피안 디자인과 아메리칸 디자인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었는데요. 결과는 실패에 가까웠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기업을 이해하지 못했고, 모티브를 얻지 못했습니다. 또한 한국의 기업은 짧은 시간에 많은 결과를 원했고, 우리들에게 구체적인 디자인 프로젝트. 즉 당장 현실적으로 결과가 나타나는 프로젝트를 원했지요. 하지만 디자인은 그렇게 하나하나 금방 진행되는 것이 아닌 인식에서 출발하여 결과로 가는 복합적인 과정이고, 기업의 디자인은 더욱 그렇지요. 고려할 것이 많으니까요. 우리는 서로가 추구하는 목표 자체가 달랐던 셈입니다. 그들은 저렴한 가격에 유럽의, 미국의 디자이너를 데리고 왔다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2, 3주안에 결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에요. 저는 디자인 프로젝트에 대한 개념, 글로벌 디자인 등의 이야기를 하며 이러한 상황에 대해 여러 번 설명했지만, 소통은 되지 않았습니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친 것은 1999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이후 1999년에 다시 한국에 와서 IDAS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요. IDAS에 오게 된 것도 사실 우연이었습니다. 1년가량 베트남에 머물다 프랑스로 돌아가려고 했던 찰나에 IDAS에 있는 한 친구로부터 초대를 받아 한국에 오게 됐거든요. 그 친구 때문에 IDAS를 방문했고, 때마침 진행되던 워크샵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잘 마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IDAS로부터 교수로 와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1994년이면 벌써 17년 전의 일인데요. 그때 처음 보았던 한국은 어땠나요? 약 20년 전에 제가 파리에 처음 갔을 때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로져 교수님도 그 당시 한국에 도착에서 많은 점에서 충격을 받으셨을텐데요.
그 때의 느낌은 한국은 전혀 다른 또 하나의 행성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한국은 해외에서 이미지로도 볼 수 없는 나라였기 때문에 아마 더 했을 것 같아요. 조 교수님이 파리에서 느꼈던 충격보다 더했을 것입니다. 1994년뿐 아니라 1999년에도 거리에서 외제차를 볼 수 없었죠. 세계 어느 도시를 여행해도 본국과 연관 지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는데요. 당시 한국엔 그러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프랑스 차 뿐 아니라 독일 차도 없었고, 무언가 친근한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1994년에 4주간 한국에 머물면서 외국인을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같이 느껴졌죠.


그 당시 한국의 도시, 특히 서울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셨는지요.
혼돈(chaotic) 상태였습니다. 명동엔 빌딩들도 많고 국제적인 도시로 보이지만 다른 곳에 가면 전혀 다른 모습이었으니까요.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와 저기가 너무나 다른, 그러나 그러한 장면이 모든 곳에서 느껴지는 그런 느낌. 빌딩과 길, 사인 등이 모두 비슷했어요. 인도가 없던 것도 신기했고요. 국제적인 장소를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의 길에 인도가 없었습니다. 특히 차가 거의 다니지 못하면서도 많은 집이 모여 있었던 달동네는 매우 재미있고 활력이 넘치는 리좀 같은 구조여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차별화된 부분에 대해 어떤 식의 문화적 접근을 하면서 그 지역 주민들의 삶과 자부심을 높이느냐를 연구하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달동네는 외국인에게는 특별한 경험을 주지만 우리에게는 가난의 상징이고, 그래서 개발의 일 순위입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곳은 좋은 장소입니다. 저는 달동네가 서울의 영혼이라 생각해요. 흥미로운 부분이 있죠. 이런 정취를 잘 살리는 디자인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공공디자인에 대해 의견을 들어 보고 싶습니다. 현재 서울은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요.
‘공공’은 지역사회에 속해있는 것이며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프랑스에서는 공공장소와 공공서비스에 대해 매우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것’이면서 동시에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죠.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른 것 같습니다. 한국의 공공장소와 공공디자인은 정치인들의 PR을 위한 것으로 보이거든요. 디자인, 특히 공공디자인은 사람들을 위한 것인지 위신이나 특권(prestige)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서울의 공공디자인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지만, 서울에 행해진 대부분의 것들이 그러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광화문에 대해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콘크리트를 없애고 푸른 공간을 만들거나, 좀 더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현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별로 없어 보여요. 아니 없다 라고 말할 수 있죠. 공공 디자인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 진심으로 배려하는 것 말이죠. 도시는 시민들의 것이자 그들의 권리니까요.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디자이너들이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 하는 것처럼 정치인들도 자신이 한 것에 대한 업적을 남기고 싶을 거에요. 문화적인 것과도 연관되어 있고요. 무언가, 결과를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것 말이죠.


부분적으로 동의를 합니다. 하지만 정치가 디자인을 이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어떤 정치적 권력이 자신의 과제를 디자인으로 삼았다면 그것을 잘 활용하면 막강한 힘이 되니 말입니다. 막강한 힘과 디자인의 결합, 혹은 디자이너의 결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업은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디자이너들은 위신이나 기업을 위한 것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해야 합니다. 즉 어쩌면 그 막강한 힘이 쓰여지는 경로와 목적에 대해서 민감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제가 대안적 디자인(alternative design)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스템은 저보다 크고 강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의 옆에 있는 자율적인 어떤 것을 선택했습니다.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에요. 한 대학에서 했던 그린디자인에 대한 강의가 떠오르는데요. 저는 그린디자인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린디자인인 존재한다면, 존재해야 한다면 디자인은 이미 실패한 것이기 때문이죠. 도발적이긴 말이긴 하지만 이것이 제 방식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발적으로 각자의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한국에서 본 한국의 현대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한국의 현대 디자인, 어떻게 보십니까?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역사적인 이유인 것 같아요. 일본에는 아이덴티티가 있어요. 무엇이 일본 디자인인지 구분할 수 있고 묘사할 수 있죠. 한국의 현대 디자인에서 한국성을 못 느끼는 것은 미국문화의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디자인은 스타일과 마케팅의 연장이기 때문에 시장이 원하는 것만 디자인합니다. 또한 디자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작용해요. 유럽인들에게 디자인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유럽에서 디자인은 특정한 느낌과 목적, 철학을 가지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디자인은 크리에이션 즉,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으로만 대부분 해석되지만 제가 느끼는 유럽디자인과 한국 디자인의 가장 큰 차이는 철학이죠. 한국의 디자인에선 철학을 찾기 어렵습니다.


한국의 디자인에 철학이 없다고 해서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찾고 만들어야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매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동시에 미래의 디자이너인 학생들에게도 강조해요. 이러한 시스템에서 탈출해야합니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불가능하니까요. 만일 미국인 디자이너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다른 답이 나올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 간의 공통점도 느낄 것이고. 한국 디자인의 목표는 미국 디자인처럼 ‘이익’이에요. 모든 디자인은 돈과 연결되죠. 그러나 디자이너의 마케팅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저는 좋은 디자인이란 timeless design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한 디터 람스를 예로 들 수 있겠죠. 한국의 소비에 대한 욕구도 디자인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배경은 소비를 자극하는 디자인이 각광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는 디자이너의 잘못이기도 하고요. 그러한 개념을 퍼트리는 사람이 바로 디자이너이기 때문이죠. 즉 브랜딩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산업 디자인에서 브랜딩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특히나 앞으로의 물건을 명품 아니면 중국산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브랜드는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브랜드의 개념을 이야기해 주시지요.
흔히 브랜드를 만들려면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오래된 브랜드에는 스토리가 아닌 히스토리, 역사가 있습니다. 브랜드는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을 바탕으로 경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제가 말하는 브랜드가 명품 브랜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사를 찾아갈 때 정보를 찾고 믿음을 갖고 가는 것처럼 브랜드도 마찬가지에요. 진실하게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하죠.



한국과 프랑스의 디자인 공정을 경험하면서 느낀 차이점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한국 회사를 위해 일들을 하면서 프랑스에서 일할 때와 매우 큰 차이점들을 느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디자이너를 대하는 인식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몸이 아파서 의사를 찾아갈 땐 완전한 믿음을 갖고 가죠. 마찬가지로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맡길 땐 완전히 디자이너를 믿어야 합니다. 디자이너는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업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설명해요. 한번은 디자인 결과에 대해 ‘내 와이프에게 묻고 답해주겠다’고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디자이너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은 의사의 말을 듣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의뢰하는 입장에서 해결책을 다 알고 그것을 조언해줄 정도이면 디자이너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면 되요. 마찬가지로 ‘컨셉’에 대한 개념도 다른데, 컨셉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direction)입니다. 스터디와 리서치를 하고 컨셉을 만드는 거에요. 그러나 한국에서는 컨셉을 마지막 결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프랑스에서 일을 할 땐 여러 가지를 디자인했지만 여러 컨셉을 제시한 적은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의 컨셉을 제안했을 뿐이죠. 문화적인 차이죠. 한국은 전체적인 그림이 아니라 제품 디자인의 디테일에 집중하니까요.


한국의 교육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너무 아카데믹하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요.
유럽의 디자인도 아카데믹합니다. 그러나 방법에 차이가 있어요. 디자인은 ‘하는 것’이죠. 무언가를 배울 땐 책을 보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습니다. 무엇을 보고, 듣고, 반드시 해보는 것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직접 경험 말입니다. 심지어 요리를 배울 때도 요리책을 보고 직접 해보아야 합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항상 조리법만 물어요. 조리법을 배웠으면 직접 해봐야 하고, 그대로만 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 무언가 새로운 시도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직접 해보지 않고, 즉 스스로의 실험을 거치지 않고 어디서 본 듯한 것들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과정이 너무 일반적입니다. 한국의 학생들이 창의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역시 문화 탓이죠.


저는 그것을 참고 문화(reference culture)라 말하는데요. 우리만의 텍스트북은 없고 외국의 것을 따르는 경향이죠. 한국 디자인의 태생적 비극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이러한 경향도 현재 30대 중반이하의 작가들 사이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한국적인 특성을 찾아가는 것으로 저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아카데믹하다고 평가되는 것은 책으로 배우는 것을 말하는 것 같은데요. 배울 수 있는 길은 직접 해보는 길 뿐입니다. 디자인 매니지먼트는 많은 책을 보아야하지만 디자인을 배울 때 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최근 한국이 프랑스의 모델이 되기도 합니다. 교육적인 면, 경제적인 면에서 프랑스의 많은 사람들은 한국을 모델로 삼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한국은 성공적이죠. 그러나 그것은 숫자에 관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육에 있어서 숫자와 관련되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학위 같은 것이 프랑스에선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다르죠. 제가 가르친 학생 중에는 박사학위를 3개나 갖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학위를 특정한 곳에 쓰진 않는 것 같지만요. 교육에 있어서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마나 배웠느냐는거죠.



디자인을 공부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특징이 있다면?
제자 중 매우 유능하고 똑똑한 인재가 있었는데 그 학생이 S 기업에 들어갔어요. 물론 그 기업은 연봉도 높고 여러 사람들이 들어가고자 곳이기도 하지만 전 개인적으로 양복입고 넥타이 착용하는 사람들은 디자이너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유능한 학생이었는데 재능을 낭비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한국의 대기업, 특히 S 기업은 제게 공장 같은 느낌을 줍니다. 한국의 대부분의 도큐먼트는 그 기업에 관한 것입니다. 중국의 공장을 연상시키기도 하고요. 저는 디자이너로서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그러한 기업에 가는 것을 권하고 싶지 않지만 많은 한국의 학생들은 그것을 꿈으로 삼고 있는 듯 하네요.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다고 생각하시나요?
매우 큰 시스템 같습니다. 그러한 대기업에서는 갖고 있는 재능을 모두 발휘하기 어렵죠. 좋은 연봉은 아파트를 사고, 자동차를 살 수 있게 해주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직업을 지속해야만 합니다. 제가 말하는 시스템은 이러한 의미입니다. 저는 아파트를 사고 차를 사는 것보다 인생을 즐기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자유를 간직하는 방식이자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 디자인 교육이 어떠한 점을 갖춰야할까요?

배우기 위해선 무언가를 지워야만 합니다. 머리를 씻어내는 것, brain wash가 필요합니다. 적당히 비워낼 줄 알아야 해요. 이는 명확한 비전(clear vision)을 갖기 위해 꼭 필요한 사항이입니다.
또 한 가지는 배우고자 하는 것에 대한 열정입니다. 저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학생들의 열정 부족입니다. 저는 수업시간에 대해 끝이 없습니다. 오히려 정해진 수업이 끝나면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죠. 하지만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즐길 수 있는 것은 제가 제 일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배움은 점수를 따기 위한 경쟁이 아니에요. 학위나 점수가 프랑스에서 중요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죠. 프랑스에서는 정부로부터 승인받은 학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 삶 전체에서 저는 결코 제 학위를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필요했던 곳이 한국이었죠. IDAS에 올 때요. 프랑스에서는 포토폴리오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포트폴리오를 보고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거에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디자인, work이기 때문에 학위 증명서인 종이를 보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필립 스탁도 정규 교육을 모두 마치지 않았지만 그는 훌륭한 디자이너가 됐어요. 디자인은 열정 없이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100% 디자인에 포함시켜야만 작용합니다. 저는 모토바이크를 즐기는데 운전을 할 때도 여전히 일을 합니다.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한국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점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까? 일반적인 특성이 있다면.

재미있는 부분이 많아요. 신선하지만 동시에 너무 순진(naive)하지요. 그 순진함이 때론 부족함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순진함은 한국의 거대 시스템이 만들어 낸 부정적 특성이죠.
하지만 저는 한국에 대해 희망을 갖고 있어요. 일부 학생들은 매우 이해를 잘합니다. 이들이 바로 미래를 위한 씨앗이고, 저는 그 씨앗을 키우고 있습니다. 12년 동안 한국에 있으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고, 많은 것을 보고 느꼈습니다. 한국의 가장 큰 특징은 속도입니다. 빠른 것은 좋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항상 먼저 하고 생각은 나중에 하기 때문에 복구를 하기 힘든 일들이 먼저 일어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프랑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행동이 너무 늦어요. 무언가를 결정하기가 매우 힘들죠. 그런 면에서 한국은 또한 매우 강한 강점을 가진 나라입니다.


미래의 디자이너이자 미래의 씨앗인 한국 학생들에게 해줄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어떤 그룹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의 색을 드러내야 하는데 물론 이것이 매우 어렵다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스템에 저항하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이 한국이 배워야 할 점이기도 하고요. 한국사회에서 습관화되어 있는 부분은 너무 순진한 것, 말을 잘 듣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디자인은 이러한 경향 속에서 진정한 창조와 사고의 힘을 발휘하는 분야이니까요.



로저 피티오트 교수는 1994년 KIDP의 프로젝트 ‘아시아의 모험’을 통해 한국과 첫 인연을 맺고 1999년 홍익대학교 IDAS의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살로몬 스키 부츠 디자인을 통해 디자인의 고전이 된 그는 VULLI, CARNAC, PUMA, TELSON 등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디자인 컨설턴트, 연구원,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프랑스의 Janus de l’industrie, 일본의 MITI Design prize 등 다수의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30년의 경력을 바탕으로 오픈디자인을 통해 디자인의 새로운 개념을 알리고 있으며 미래의 한국을 이끌 디자이너를 위한 교육과 함께 대안적 디자인에 대한 연구를 펼치고 있다. 그의 오픈 소스 디자인 작업과 세미나에 대해서는 다음의 사이트에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www.roger.pitiot.com
디자인 정글에서 퍼온건데...

하아....

정말...저런 개념을 한국에 마구 퍼트리고싶구나.....

3류 디자이너인 나로썬..정말 눈물이흐를지경..

해당 인터뷰의 디자인 정글 링크

글쎄..고졸 대졸 수입격차니뭐니 그런것보다.. 잡담 혹은 바늘찌르기

반값 등록금’, 대학생들은 말한다

일단.......
나도 고연봉자는 아니고..중간에 걸쳐있거나 뭐그럴것 같은데...

내가 수도권 대학을 나온것도 아니고 지방대를 나와 어찌어찌 제품디자인을 하면서 여기까지 올라온건..꽤 나쁘지않은 인생패턴이었구나..하지만..

사실, 사회생활부터 대학생활까지 아우르며 겪은 것들을 봄....

대학의 등록금 문제는 우리때(뭐 90번 초입 학번들)만해도 국립아니면 사립 정도로 갈릴정도였고 (일부 배꽃학교 이런거 빼고)
대학을 다닐때도 사실 사립대 등록금 문제는 간간히 나와도 치명적이진않았다.
문젠

내가 복학을 하고 대학을 졸업할 무렵쯤되니..슬슬 상황이 심각해지더라.

대학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대학갈때 수십개에 불과하던 산업디자인 학과가 어느새 100개정도로 훌쩍 뛰더라.

많아봐야 5-60개던 산업디자인 학과가 (그나마도 제대로 하는 산디전공을 가진 학교는 지금이나 그때나 전체 산디과 중50%정도였다) 두배로 뛴다는건..2배의 졸업자가 나온다는 말.

내가 4학년이 되었을때도 일자리가 슬슬 적어지는 시점이었고 다행스럽게 인터넷 커뮤니티활동을 왕성하게 했던 터라 지방대임에도 불구 4학년 올라가면서 서울의 디자인 회사에 취업이 되었다.
물론 교수들한테 아양떨고 협박(?)을 해서 시험은 꼭 보러 오고 리포트로 수업을 대체한다는 양해를 받는데 한달이 걸렸지만..

여튼
취업을 하고 나니...점점 상황이 안좋게 변하는게 보였다.

내가 고교를 다닐때는 대부분 중소도시에 대학이 1-4개정도 몰려있는경우는 있지만 대게그런 경우는 산업활동이 어느정도 있는 지역인 경우가 많았고 대도시 인근의 중소도시에 대학이 1-2개 정도 있는 경우가 조금 있었으니..

헌데 대학을 졸업할 무렵엔 중소도시의 주변까지 포함 대학수가 4-7개가 몰리는것도 보게되었다.
한해에 대학이 2개나 생기는 것도 목격했고 지역 고교에서 끝자리 차지하던 학생들이 대거 신설학교에 몰려 겨우 군소재지밖에 안되는 고향에 집집마다 대학생 하나둘은 있는 집이 허다해지기 시작했다.

의외로 국립대나 사립대 중 지방대학에서 전통이 있고 규모가 되는 학교는 사정이 크게 나빠지진않았는데 (경쟁율 3.0대를 찍던학교가 2.1로 떨어진대도 신입생 모집에 어려운건아니니...) 문젠 학과마다의 전문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학부제로 변경되고, 복수전공이 되면서 특정교수의 입김이 세지면 해당 전공으로 몰리거나 혹은 새롭게 부상하는 전공쪽으로 학교의 지원이 몰리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지방대의 경우엔 특히, 사립대는 더더욱 이러한 현상이 극심해 졌는데 내가 다닌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가구 디자인과 제품디자인이 주 이던 학과가 인테리어를 받아들이면서 이상한 복수전공체제가 되었는데, 산업디자인에서 왠 인테리어냐..라고 할 분들이 많겠지만, 그런 학교가 굉장히 많다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튼, 인테리어쪽 전공이 생기면서 산업디자인 학부에 제품,가구,환경디자인(실상은 걍 뭐 잘해야 인테리어 -_-) 3가지 전공이 혼재했는데 웃긴건 3가지 모두 듣거나 2개만듣거나...

결정적으로 가구 디자인 전임교수는 퇴임이 코앞인 할아버지..
결국 남은건 제품과 환경...
인테리어쪽이 부상한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일단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당시 (원래 93학번으로 수도권 사범계에 갔다가 다시 재수를 해서...쩝..94학번) 보통은 산업디자인 계열은 35명 정원이면 남자가 30명이나 25-28명정도로 압도적이었는데
점차 그 비율이 비슷해지더니 나중에 졸업할 시점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많아지는 경우까지 발전(?)했다.

그러다보니 환경디자인계열이 부상했는데, 생각해보라..
아무리 산디 전공이 좋아도 여성들이 산디전공을 쉽게 받아들이는건 만만치않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 정도로 생각하거나 혹은 산디라는 부분이 좋아보이거나 전망이 있어보이거나 혹은 성적이 맞아서..라는 이유로 온 학생이 부지기수였는데, 특히 기계류나 기술에 대해서 남성보다는 확실하게 기피성향을 보이는 여학생들..

대게 여학생들은 제품디자인은 피하고 인테리어로 몰렸고 가구 디자인이 워낙 위험한 공구도 많이쓰고 하다보니 제품을 선택한 사람도 있었지만 겉치레일 뿐이었다.

사실, 제품수업때 인간공학이니 CAD니 디자인 방법론이니 재료학 등등을 배울때 여학생들의 선택은간단했다.
누군가 과제를 잘해오는 사람이있는 조에 들어가기...
물론 예외도 있다. 후배중 제품디자인을 정말 잘해서 꽤 잘나가는 후배도 더러있으니.
허나 보편적으론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물론.....
내가 겪어본 홍대나 국민대 학생들은 그래도 좀 낫긴했다..아니 월등했다.
여튼

그렇게 같이 졸업한 여학생들이나 적성이니 뭐니 생각안하고 들어온 사람들..동기 or학번후배기수들..
대부분 엉뚱한거 한다.

40명정도 졸업을 했는데 제품디자인을 하는 사람은 꼴랑 4명. 대학원 대여섯...

자...
내가 대학다닐때 등록금이 250-260정도 였다. 해마다 일단 등록금으로 500꼬라박아주고
대게 그땐 컴퓨터를 많이쓰기시작할 때라 사양이 좀 좋은 것으로들 구입했다.

대게 모니터 빼고 120-160선을 주고 구입... 물론 제일많은건120만원 대. 허나 모니터 구입하고 프린터 사고 하면...200정도는 가뿐히 넘겼다.

알바를해서 당시 65만원이던 엡손 EX2를 샀는데 A3프린터를 가진 사람이 학과에 2-3명이더니 후반기에는 순식간에 반절 이상이 A3프린터를 구입했다.
아무래도 공모전이니 뭐니 하다보니 필요했지...

자...
연간 1200넘게 지출. 허나 먹고 푸고 등등을 감안하고 거기에 재료비.
아이소핑크나 우드락, 수지, ABS, 마카, 스프레이, 책, 등등등등.............
골때리게도 환경교수는 학생들에게 평균 전지사이즈로 인쇄를 해서 두장세장네장을 붙이도록 주문을 많이 했는데, 이것도 골때렸다.
A3로 몇장을 뽑아야 전지3-4장규모를 뽑겠나?
더더욱 주로 흑백을 선호했다는 것.

복사기 애찬론자였으니 뭐 -_-a
꾸질한 본인 학과 얘기가 좀길다 -_- 여튼

월 3-40정도 돈이 들어가는건 일상이었고 토탈 1998-2001년까지 매년 대충 보면 등록금 연간 500만원..매월 35만원정도로 1년이면 420만원. 뭐 방학때도 집에안가고 작업하는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돈을 더쓴듯 대략 500이상...즉..이것저것하면 기본 연간 1000만원. 4년간 4000쓰지만 졸작할때 적게는 백만원 많게는 이삼백까지 들였으니...가외 비용까지 하면이미 1998-2001년도에도 5000만원을 들여 대학을 나왔다.
거기에 어떤 애들은 연수도 갔다오고 학원도 다니고...6-7천씩 쓰는 애들도 있었을테니...

나같은 경우엔 아이소핑크도 남들쓰고 버린 덩어리를 이어붙여쓰곤했고 (사면 좀 아까울정도로 남들이 많이버리더라) 졸작도 그래서 거의 뭐 재활용(?)이었다.

같이 졸업한 애 중 대학원까지 간 여자애가 있었는데 대학원 졸업하고 바로 시집가더라.
즉 그애는 대학원까지 해서 억을 넘게 쓰고도 시집을 가버린 케이스
물론 보편적이란 얘기가 아니라 그런 사람도 있고 그 수가 적진않다는 점.

자자..

지방에 널려있는 수많은 대학중 대부분이 저런다.

심지어 고등학교에서 앞에서 몇등이아니라 뒤에서 몇등을 세는게 쉬운 아이들도 대학엘간다.

고향에서도 전체등수에서 뒤로 몇명안남는놈이 전문대 공과계열로 가더라.

딱봐도 이건 좀 아니지않은가?

또 그런사람들이 졸업한다고해서 써먹을수있나? 그것도 아니다.

물론 중소기업이나 소기업 생산직이 버는 돈이 많진않고 대다수는 매우 적다.
허나...

중요한건, 2-4년제 대학졸업한 사람들이 버는 돈을 감안해보면 오히려 대학에서쓰는돈이 과도하고 투입대비 회수의 비율이나 쓰임새의 비율에서 비효율적이란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물론 물론물론...여기서 짜증나는 대목은 한국에선 대학졸업자가 많아서 그런일들은 잘안해, 뭐 이런말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난 엉뚱하게도..대학들 체계문제를 얘기하고싶다
서울대에도 있고 지방 신설 전문대에도 있는 학과.

특성이 뭐가있나?

어느대학엘 가도 내가 졸업한 산디과가 대부분 있다.
200개가 넘는 대학에..98%는 산디과가 있을것이다 (99%일지도..)

무슨 변별력이있는가?

저렇게 졸업자를 배출하면 사회가 받아들일정도로 일자리가 충분한가?

산디과를 나온 놈이 유통업체에서 전단지나 만들고 시각 디자인 졸업한 사람이 동네 간판가게에서 플랭카드를 만든다.

돈들여 배운것을 써먹지 못할뿐더러 돈들여 배운 것을 써먹을만큼 효율적이고 좋은 스킬로 만들어주지도 못하는 대학이 부지기수다.

여기서 대학졸업한 사람과 고교졸업자 생산직을 수입격차로 어쩌고 하는건 솔직히 양 진영(?)의 입장 혹은 단편적인 내용으로만 보려는 그런 편향된 시선이 아닐까?

난 대학을 줄여 사교육비가 급격히 증가하는사태가 벌어지더라도 대학수는 전국 통털어 60개미만으로 줄였으면 하는게 생각이다.
각 도당 많아야 4개, 광역시같은 대도시에 1-3개, 그러면 이미 수도권계열과 전국포함 60개 미만으로 줄이는건 가능할것이다.
그리고
이곳저곳에 산재한 동일 전공을 줄이는 것이다.
전공간변별력도 만들고 가치성과 전문성을 보장해주자는 것이다.

또한 전문대는 생산기반이 되는 제조업체를 위해 전문적인 제조생산직이나 관리직, 유통직 등을 키울수있는 산학연계형 학교같은걸로 바뀌어도 나쁘지않을 것이다.

아예 전문대가 소기업을 위한 대학내 기업을 만들어도 좋다고 본다.
졸업자를 수용하면서 중소기업의 생산지원이된다면 그 누가 그런 대학을 마다하겠나?

공무원시험이니 뭐니 해서 몰리는 인력들을 생각함 사실 이도저도 답은 아니라보긴 한다. 이상향일뿐.

세상에, 수도권 디자인계열 대학을 졸업하고도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는 지인을 보면..답답할뿐이다.
한학기에 300이 넘는돈을 들여 졸업해놓고도 정작 본인은 그쪽 적성이 아니란다.
어쩌라고????

톡까놓고 청년 백수로 허송세월보내는시간같은걸 생각해보자.
생산직..물론 비젼 약하다
하지만 돈은 안버는것보다 버는게 낫고 일자리는 없는것보다있는게낫다.

월 200도 못번다고 찌질거리며 취업재수 삼수 하면서 연간 돈천이상씩 깨먹는것보단 월200을 못벌어도 돈버는게 더 이득아닌가?
주변에 제조업체 생산직을보면 평균적으로 나보다 먼저 퇴근한다.
연구소 소속이다보니 난 주4일이상을 8시이후에 퇴근하는 일이많다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하지않았고 이쪽에 적성이아니었다면...글쎄..처음엔 그저그랬겠지만 별수없이 생산직이 되었겠지.

얼마전 본 TV에서 집을 3채나 가진 수억원의 은행대출빚을 진 아줌마를 본적이 있는데
하는소리가그거다
왜 은행에서 대출을 막해주고 왜 집값은 뚝뚝떨어지게 만들고 왜 은행이자는 이리 비싸냐....

...
자기가 선택한것을 마치 남의일인양 말하면 안된다.
대학도 본인들이 가서 취업이 안된다 먹고살기어렵다 등록금낮춰달라...
부분적인 학생들 제외하고 대다수 학생들에게 묻고싶다.

정말 청운의 꿈을 품고 열성과 성의를 다해 대학생활을 했고 비젼을 생각해서 노력해서 대학을갔나?

지식인 질문에 답해주다보면 늘 보는 질문이그거다
이 전공 취업잘된다면서요 전망이 좋다면서요 연봉이 높다는데 어떻게 가나요 등등

국민대 공디 나와 기아에 취업했으니 전망좋은거니까 내가 내신이 6등급이지만 지방 전문대 산디과가면 나도 디자이너가 되겠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많다.
같나? 국민대와 지방전문대산디과?

늘 난 말한다.
공부를 잘하면 디자인을 잘하는게 아니라 디자이너가 되기위해 좋은 대학에서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있도록 "공부마저 열심히 하는 사람"이 좋은 디자이너 우수한 디자이너가 될수있다고.

말만 졸라 길다..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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